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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이야기] 조선후기 문인화가 조영석``` 비운의 선비화가가 그린 바느질
작성자 museumsoo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조선후기 문인화가 조영석…비운의 선비화가가 그린 바느질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수정 2021-06-04 09:02

 

시대평판에 갇혀 수치와 불행으로 받아들였던 재능
■ 조선후기 문인화가 조영석
세 여인이 옹기종기 앉아 바느질에 여념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묘한 선
자신 그림 15점 모은 화첩에 '사제첩' 명명
'남에게 보이는 자는 후손이 아니다' 경계
화가를 천히 여기는 조선사회 풍습 희생양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436412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30pixel, 세로 988pixel

관아재(觀我齋) '나를 바라보는 집'을 짓는 일이 '바느질'인가? '관아재'와 '바느질'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뜬금없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관아재'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화가인 조영석(1686~1751)의 아호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삼재(三齋)'의 한 분으로 손꼽히는 작가다. 그를 선비화가라 부르는 일은 어쩌면 그를 욕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일로 그를 설명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 15점을 모은 화첩에다 '사제첩(麝臍帖)'이라 명명했고 그 첩의 표지에다 "이 화첩을 남에게 보이는 사람은 내 후손이 아니다(勿示人 犯者 非吾子孫)"라고 써두어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흔하지 않게도 바느질하는 장면을 그린 부채 한 점을 구하게 되면서부터다. 세월의 무게를 담고 달빛에 절인 듯 콩댐한 색이 노랗게 가라앉아 있는 부채도 부채이지만 섬세하고 정제된 필치의 바느질하는 장면을 그린 솜씨가 빼어났다. 마치 한편의 이야기책을 읽듯 웃음을 머금게 하는 상황묘사가 일품이었다. 안경을 낀 할머니는 바느질을 하다 실이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4364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7pixel, 세로 481pixel

조영석 작 '바느질'.

다했나보다. 실을 꿰어야 하는 상황에서 손녀를 불러서 부탁했지만 아직 그 일이 서툰 손녀는 애를 쓸 뿐이다. 바늘귀에 실이 잘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실 끝에 침을 바르려 혀를 살짝 내민 그 찰나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잠시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돋보기안경 너머로 실을 꿰고 있는 손녀를 바라다보는 모습은 다정하다. 할머니의 넓은 치마는 할머니의 품성처럼 넉넉하다. 하지만 손녀는 발끝에 잔뜩 힘을 주고 곧추세운 허리로 긴장되게 앉아서 바늘귀에 집중하고 있다. 의습선(衣褶線)도 긴장된 표정을 따라 직선으로 경직된 표현이다. 하지만 화가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인당(仁堂)'이라는 글귀만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 부채 위에 그려진 그림이 대학시절 보았던 관아재 조영석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조영석의 '바느질'은 세 여인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22.5×27㎝)이다. 그는 자신이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이 직접 쓴 글에 보이는 내용이다. "아잇 적에 그림을 배웠으나 마침내 이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해를 당했다.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兒時學畵 遂以此爲老年身害 悔之何及)" 관아재의 필선은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김홍도 그림에 나오는 인물의 선처럼 활력 있고 풍부한 감정이 느껴지는 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풍속화가 신윤복의 선처럼 단아하고 세련미 넘치는 선도 아니다. 그의 선은 해야 할 말은 많은데 자꾸 끊기는 말처럼 눌변이지만 한 선 한 선에 진정성이 녹아 있다. 그려진 대상들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런 묘한 선이다. 묘사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린 일상의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세히 그들을 살펴보고 마음에 두고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조선 사회 풍습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조선 사회가 화가를 천하게 생각하였기에 그는 왕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일을 감사하는 감동관(監董官)의 자리에 나아가지 않았다. 영조대왕의 부름에 선비가 붓을 들 수 없다고 하여 거절했다. 그런 뒤에 붓을 꺾은 그의 그림들을 귀하게 생각해 묶어둔 화첩들까지 없앨 수 없는 노릇이어서 '사제첩'이라 이름 붙였다. '사제'라는 것은 '사향노루의 배꼽'을 의미하는 말인데 가장 귀한 재능 때문에 화를 당하게 된 것을 비유해 썼다. 마치 사향의 향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목숨을 잃은 노루가 제 배꼽을 스스로 해치는 일에 비유한 말이다.

부채의 바느질 그림과 관아재 조영석의 바느질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관아재'라는 말과 '바느질'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같은 평면에 엮어진다. 그래서 바느질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을 관조하는 행위라는 또 다른 의미의 강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두 개의 단어가 같은 평면에서 엮어질 때 단어와 단어 사이는 무한한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문득 전화를 걸어서 딸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다. "엄마는 밥 먹었냐고 몇 번이나 물어봐요? 좀 전에도 물었잖아?" 하고 볼멘소리다. 딸은 아직 엄마의 그 말 속에 숨겨진 후경(後景)을 볼 수 없다. 나도 그때는 그랬으니까. 그저 엄마가 늘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말 속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과 너를 사랑한다는 수백 번 해도 좋을 그 말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아버지도 아직도 내게 하는 말씀이다. "그렇게 바빠서 어쩌누, 밥은 먹고 다니지?"라고 볼 때마다 같은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말의 후경에는 '네가 걱정이 많이 되는구나, 그리고 늘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단다. 힘내렴'이라는 의미들이 숨어있다. 같은 말이라도 때로는 그 말의 빛깔이 밝을 때도 있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다. '그래 열심히 살아주어 고맙구나, 그래서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들어도 괜찮은 그래서 그 위로가 들키지 않는 무심한 말들로 아픈 마음을 무장시켜 놓았다는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4364000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23pixel, 세로 308pixel

관아재 조영석이 자신의 그림 15점을 모은 화첩을 '사제첩(麝臍帖)'이라 명명했다.

것을 나의 딸에게 그 말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새처럼 가난하고 나비처럼 신성할 것.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사랑으로 침묵할 것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이성선의 '티베트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의 한 구절이다. 새와 가난, 나비와 신성이라는 단어들은 참으로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하지만 '처럼'처럼 사소해 보이는 접점이 있을때 그 의미는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새처럼 가난하고'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난의 의미는 우리의 의식의 지경이 이를 수 없는 곳에 있다. '나비처럼 신성할 것'의 깊은 강물 같은 의미는 가슴으로 이해하기에는 벅차다. 하나로 있을 때는 참으로 외롭고 가난한 단어들이 '처럼'의 바느질로 엮일 때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기적은 우리의 일상에도 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말의 전경(前景) 뒤에 있는 후경(後景)의 의미를 읽을 줄 알 때 진정한 소통에 이를 것이다.

지금 밭에서 푸르고 연한 상추 몇 잎을 뜯어 그녀에게 보낸다. 상추는 금방 시들고 그녀가 그것을 열어보면서 실망스러운 마음을 짓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싸서 보내었다. 상추 잎을 뜯는 동안 상추 잎 같이 푸르고 싱싱한 감사의 마음 안에 그녀를 담았다는 것을 그녀가 알 수 있을까? 한 잎 한 잎 상추 잎처럼 서로에게 포개어진 마음들 때문에 그래도 아직은 이 팍팍한 세상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단풍잎을 주워서 책갈피에 넣을 때 내 짝은 고운 단풍잎들을 가득 모아서 말없이 건네주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받아들고 그 단풍잎을 밤새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그 아이가 보내준 작은 미소도 오랫동안 마른 단풍잎과 함께 책갈피에 머물렀다.

 

비운의 선비화가 조영석의 '바느질' 그림을 보면서 시대의 평판에 갇혀 재능을 수치와 불행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그는 자신을 관조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궁금하다. 서로의 고유한 색깔을 지우지 않아도, 사소해 보이는 '접점'만으로도 무한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상생'의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