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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문자문을 보면서
작성자 museumsoo

여염집 마다 호롱불 밝히고 꿰매던 염원

수복문 베갯모
밤마다 결혼앞둔 소녀들의 자수 풍경
비단실에 꿈과 사랑 바늘끝으로 고정

복·부귀·다남·쌍희자 문자문 베갯모
기쁨이 끝없이 지속되기 바라는 소망
근대화 시작 sweet home 영문자수
남성 사용 육골 베갯모 충성·효 글귀
잠자리에도 수신하고자 한 선비 정신


중국 신장 투루판의 서쪽 야르나즈 계곡에서 발견된 교하고성(交河古城)은 오로지 모래와 황토, 간간이 석재로 이루어진 유적지였다. 몽환적인 풍경 안에 갑자기 화려한 차도르를 입은 두 명의 위구르 소녀들을 만났다. 소녀들은 온몸을 감싼 차도르가 오색의 화려한 무늬로 뒤덮여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사막의 단조로운 풍경과 건조함들이 일시에 신선하고 생생함으로 바뀌게 했다. 그 색들은 온몸의 세포들을 깨워 풍경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이게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비로소 색은 ‘생명’임을 느낀다.

위구르 소녀들의 의상에 보이는 5가지 색상은 흔히 우리가 오방색(五方色)이라고 하는 빨간색, 파란색, 황색, 검은색, 흰색을 주조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색동과 비교하면 그 배열에 있어서는 매우 역동적이다. 균일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화려한 가운데에서도 정제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색동에 비해 지그재그로 색채를 배열하고,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배열함으로써 화려함과 역동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문양이다. 끝도 없는 사막의 환경이 주는 지루함을 색채로 극복하려는 생존의 색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베갯모 자수도 여염집의 단조로운 풍경 안에서 밤마다 호롱불 아래 펼쳐내는 화려한 축제의 향연이었다. 여름에는 길쌈을 했기 때문에 주로 겨울에 자수를 놓았다. 추운 겨울 호롱불 아래 결혼을 앞둔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수를 하던 풍경이 아련하다. 한올 한올 비단실을 풀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꿈과 사랑이 풀려나와 바늘 끝으로 단단히 고정되고 있었던 걸까.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진 수틀에 수를 놓던 소녀들도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그 아련한 풍경을 이렇게 들려주는 이가 있다. “그때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아무 말 없이 수를 놓을 거면서 왜 모여서 수를 놓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 내가 수를 놓아보니 함께 수를 놓을 때 말없이 공감되는 그 어떤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고운 비단 수실의 한 자락에서 꽃이 피기도 하고, 푸른 잎이 돋아 나오기도 하는 동안 동네의 젊은 청년들이 어느 집 부엌에서 구해왔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밥과 김치 한포기를 슬며시 방안으로 들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인정어린 풍경들이 그렇게 예쁜 수에 스며있다.

이러한 자수 베갯모에는 꽃과 새뿐 아니라 글씨도 수놓아졌는데 전통적인 문자문(文字文)베갯모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문자가 수(壽), 복(福),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의 문자이다. 이 가운데 쌍희자(囍)자문은 음양화합의 의미로 즐겨 사용되었다. 특히 테두리에 아자문(亞字文)을 두른 희(囍)자문 베갯모는 1970년대 전후에 순창지역을 중심으로 지역특성화 자수산업과 관련이 깊다. 정부는 농촌지역 청소년들이 무작정 도시로 상경하는 것을 막고,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수본을 표준화하고 실 염색법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이때 순창지역을 중심으로 희자문을 수놓은 베갯모가 다량으로 제작되어 상업화된 유통이 가능하였다.
 
문자문 육골 베갯모와 근대에 제작된 문자문 베갯모.(왼쪽부터)
 
처음과 끝이 같은 아자문을 두른 것은 ‘영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베갯모 형식은 기쁨이 오래 끝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문자문 중에 수(壽), 복(福), 희(囍)를 합하여 읽으면 ‘수복희’, 즉 ‘가득’ ‘많이’의 의미로 사용하는 ‘수북하게’ ‘수북이’의 어원이 된다. 특히 순창지방에서 구전되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남색바탕을 사용하면 부부가 서로 남남이 된다고 하여 베갯모 자수바탕에 남색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기를 피해가고자 하는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삶에 대한 어떤 종류의 외경심과 경건함이 녹아든 행위다.

이러한 문자문은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문에서 한글로 그리고 영문으로 단어가 변해가면서 자수베갯모를 장식한다. 오복(五福)이 행복 그리고 sweet home, lucky, happy 등의 영문으로 바뀐다. 고대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케이토스’라고 하는 자수를 놓은 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띠가 애정을 일으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행복이든 행운이든 사랑이든 우리 옛 여인들의 ‘케이토스’는 베갯모 자수였을 것이다. ‘일심동체’ ‘일편단심’ ‘백년해로’ ‘부귀강녕’ 등의 글귀가 때로는 획이 모자라기도 하고 거꾸로 수놓아지기도 하였지만 호롱불을 밝혀 수를 놓던 그 소망만큼은 간절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던 육골(肉骨)베갯모에는 정신을 헹구어줄 귀한 글귀들을 모아서 머리맡에 두었다. 베갯모의 양쪽 면에 ‘충위백세지절(忠爲百世之節), 효시만행지원(孝是萬行之源)’이라 수놓았다. “충성은 백세토록 지켜야 할 절개고, 효는 만행의 근본”이라는 경구를 새겨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했던 선비의 수신(修身) 정신이 보인다. 하지만 조선의 왕에게도 이 수신은 쉽지 않았는지 고종 1년의 국역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항간의 하찮은 선비들도 이 숙흥야매잠을 베개, 안석, 병풍 등에 써서 늘 눈으로 보고 종신토록 암송하기도 합니다. 우리 전하께서도 이 진씨의 잠(箴)을 가지고 항상 거울로 삼고 마음에 새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왕에게 간한 구절이 보인다.

문자의 힘을 믿어왔던 동양의 전통은 종기가 났을 때에도 호랑이 虎자를 써서 얼굴에 붙여 두었다. 서책을 그린 그림만으로도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서책을 숭상하고 인문의 지혜를 통해 수신을 하고자 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베갯모 수에는 이처럼 의관을 풀고 누운 잠자리에서도 자신을 경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조선의 선비정신이 살아있다.
 
사막 위에서 생생하게 빛나던 위구르 소녀의 차도르처럼 베갯모수의 문자와 화려한 색채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신라의 잃어버린 해와 달의 정기를 찾아 왔듯이 한 올 한 올의 정성으로 우리의 영혼을 감싸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