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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님의 모시옷
작성자 museumsoo

금호강 아양루 바람결에 실려오는 詩, 꽃 시샘하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옷고름

아양루의 누대에서 열린 시낭송 행사.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한복이 눈길을 끈다. 번암 채제공 초상 (작은 사진).
꽃뜰 시낭송원 대구지부 회원들이 야외정기공연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벚꽃이 내렸다. 금호강 강변을 따라 시가 내렸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연둣빛 옥사치마에 각색의 꽃무늬 저고리를 차려입고 아양루의 누대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다. 한복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금호강줄기의 봄꽃, 아양루의 오랜 나무기둥이 어울려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 옛 모습과 오늘의 조화로움을 선사했다.

금호강은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琴)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 하여 금호(琴湖)라 하였는데 오늘은 그 강물 위에 시가 내렸다. 가슴 꽁꽁 묻혀있던 시어들이 옷고름 풀고 내려앉은 것이다.
 
유장한 강물의 숨길을 따라 가벼운 탄성으로 깊은 시름으로 때로는 울음 울듯 젖어내렸다. 시는 어여쁜 그녀들이 찾아낸 세상 어딘가 묻혀있던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따뜻한 목소리의 결들을 타고 내렸다. 그리고 시들이 물고기처럼 강물을 안고 출렁일 때마다 떠오르는 소름 돋는 천년의 기억이 있다.


詩만큼 아름답고 고운 한복의 자태
누대 기둥마다 詩 현판 천년의 기억
번암 채제공(1720∼1799)
텅빈 안방 마름질 하던 채 놓여진 옷
부인과 사별후 詩에 토해낸 그리움
시대상 흔치 않은 주제…따뜻함 배어


아양루(峨洋樓)의 현판은 이백두라는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했던 서예가가 쓴 글씨이고 누대의 기둥마다 옛 선비들이 금호강과 아양루의 풍광을 배경으로 쓴 시들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이처럼 선비들의 풍류와 수양처가 되었던 누대의 이름을 아양이라 택한 것은 열자 탕문편에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비롯된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훌륭하다. 우뚝 솟은 그 느낌이 태산 같구나”라고 했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강과 같구나”라고 했다. 이처럼 백아가 거문고를 통해 드러내는 뜻을 종자기가 다 파악하니 여기서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막역한 친구’를 뜻하는 지음(知音)도 유래하게 되었다. 즉 옛 선비들이 막역한 벗의 사귐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였는지를 아양루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에 저고리에 드리운 옷고름도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문득 번암 채제공(1720~1799)의 시가 바람결에 실려온다. 채제공은 부인이 죽은 뒤 텅빈 안방에 들어가보니 자신의 옷이 마름질하던 채로 있는 모습을 보고 한편의 시 ‘白紵行(님의 모시옷)’을 남긴다. 그 옷을 마무리해 달라고 늙은 침모에게 부탁하니 자신은 솜씨가 부족하여 부인이 하던 일을 마무리할 수 없다고 하는 장면과 더불어 한숨에 토해내듯 그리움을 토한 시들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皎皎白紵白如雪(희디흰 모시 옷감 흰 눈처럼 깨끗한데)/ 云是家人在時物(집사람이 죽기 전에 마름하던 것이라네.)/ 家人辛勤爲郞 (집사람이 어렵사리 남편 위해 장만해서)/ 要 未了人先歿(옷 짓다 못 마치고 그 먼저 죽고 말았네.)/ 舊 重開老姆泣(묵은 상자 열어보고 늙은 침모 울먹이며)/ 誰其代 婢手拙(솜씨 없어 마님 대신 지을 수 없다 하네.)/ 全幅已經刀尺裁(그 온폭은 이미 잘라 마름질은 끝마쳤고)/ 數行尙留針線跡(두어 줄 바느질 흔적 또렷이도 남아있네.)/ 朝來試拂空房裏(아침에 시험 삼아 안방에서 펼쳐보니)/ 疑更見君顔色(어렴풋이 그대 얼굴 다시 보는 것만 같아)/ 憶昔君在窓前縫(생각건대 지난날 창가에서 바느질 하면서)/ 安知不見今朝着(옷 입은 날 보지 못할 줄 어찌 알았겠소.)/ 物微猶爲吾所惜(물건이 하찮아도 내겐 하 그리운 것이니)/ 此後那從君手得(당신 손길 닿은 옷을 어찌 다시 입으리까.)/ 誰能傳語黃泉下(황천의 그대에게 누가 이 말 전해 주리요.)/ 爲說穩稱郞身無 隙(이 모시옷이 내 몸에 아주 잘도 맞는다고.)

 

이 시는 당시 선비들의 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다. 주로 수양이나 교화를 주제로 삼았던 선비들의 시세계에 익숙하거나 홀로 오랫동안 정승을 지낸 그의 행적에 비추어보면 의외로 느껴진다. 채제공의 부인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인 것이다. 마름질하던 옷감을 바라보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그 비통한 느낌들이 절절히 다가온다.

번암의 이러한 심성과 인간성은 매사에 선(善)을 다하라는 그의 다짐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번암의 당호는 ‘매선당(每善堂)’이었다. 다행히 다산 정약용이 쓴 매선당의 기문이 남아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다산이 문과에 급제한 뒤 번암 상공 댁을 찾았고, 그곳에서 매선당이라는 현판을 보았다. 유래를 묻자 번암은 “이것은 내 아버님께서 남겨주신 뜻일세. 선고께서 임종하실 때 내 손을 잡고 ‘너는 매사에 선을 다하라’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네”라 했다.

이처럼 의복이나 바느질에 관한 시들이 흔치 않은 가운데 또 한명의 선비가 남긴 시가 있다. 옥담 이응희(1579~1651)이다. 옥담의 한시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시로 쓴 백과사전을 저술하였다는 점이다. 옥담공은 ‘만물편’이라는 280수 연작시를 제작하여, 인간세상의 만물을 하나하나 시에 담아내었다. 만물편은 세상만물을 음양류·화목류·과실류·곡물류·소채류·어물류·의복류·패용류·문방류·주거교량류·기구류·기명류·악기류·기국류·재물류·축물류·금조류·수류·행충류·비충류·음식류·약초류 등으로 나누었다. 특히 어물류는 다시 동해산류·서해산류·강어류·천어류로 나누어 총 25류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 다시 280종의 사물을 배열하고, 하나하나의 사물에 대하여 오언율시를 지었다. 우리 한시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특히 ‘의복류’에서는 일반적인 의복 외에 여우가죽옷·양가죽옷·솜옷·홑옷 등 당시 가장 일반적인 옷, 그리고 관(冠)과 허리띠, 홀(笏) 등 8종에 대해 시를 지었다. 의복에 관한 한편의 시를 보자.

穀腹旣云重(곡식이 비록 중요하다 하지만)/ 絲身亦有章(의복 또한 각각 법도가 있지)/ 褐寬寒士服(갈관은 빈한한 선비의 옷이요)/ 綾段大夫裳(비단옷은 사대부들의 의복이지)/ 連氣傳相服(형제끼리 물려받아 입고)/ 同調贈不忘(뜻이 통하면 정표로 주기도 했지)/ 懸 亦自樂(누더기 입고도 스스로 즐거워)/ 獨坐負朝陽(홀로 앉아 아침 햇볕을 쬐노라.)

저렇듯 바람을 품어 넉넉하고 선을 따라 고운 우리 옷의 자락과 그 옷에 대한 이야기의 흔적들이 천년을 이어 후대로 이어지길 빌어본다.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