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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신사임당
작성자 museumsoo
색동옷 입고 어머니와 바느질하던 행복한 기억…섬세한 예술로 승화


신사임당 필적자수병풍.(공단에 견, 서복려 작, 박물관 수 소장)


신사임당 초충도 모사 자수병풍.(연대미상, 박물관 수 소장)




신사임당 초충도 8폭 ‘양귀비와 도마뱀’. (16세기 초,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초록잎들이 한 뼘씩 자랄 때마다 산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을 공간들을 더 만들어간다. 그 길 위에 아카시아 꽃까지 치장하였으니 멀리서 보면 녹색의 구름이 산 위를 감싸안아 그 부드러운 곡선은 아이의 미소처럼 곱다. 그 산길을 따라 박물관으로 찾아든 일본인 부부 관람객이 있어서 모처럼 신사임당(1504∼1551) 필적 자수 병풍 한 틀을 꺼내놓았다. 남녀는 여행자의 여유를 가진 채 그 병풍 앞에서 한참을 보냈다. 사진을 찍는 등 시종 놀라워하는 모습이었다.


16C 힘있고 단아한‘초서풍’중심인물 신사임당
섬세하고 서정 강한 작품 마음·눈길 사로잡아
정결한 글씨 후세에 남기기 위해 탁본으로 보관
오늘날까지 수려한 자수병풍 만날수 있는 계기
바느질 조각 천으로 한땀씩 이어진 ‘추억의 수’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글씨를 처음 마주할 때 마치 사임당을 마주한 듯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사임당의 초충도의 이야기며, 자수병풍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던 까닭이다. 거기에 더해 강릉지방의 자수보 수 문양이 아름다운 것은 사임당의 영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임당의 글씨로는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 폭, 그리고 해서와 행서의 묵적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기에 초서 자수병풍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초서 여섯 폭은 세월의 흔적 때문에 선명하지 않아 오히려 색 하나 바래지 않은 이 자수 병풍은 더 명료하게 사임당의 예술적 지향을 들려주는 듯했다. 검은색 공단바탕에 연한 노란색 수실로 한땀한땀 수를 놓았다. 필획 하나 틀림없이 정교한 수 솜씨다.


16세기는 힘 있고 단아한 초서풍이 등장하는데 그 정점에 있었던 인물 중의 한 명이 바로 신사임당이라고 한다. 이 초서병풍(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1호, 오죽헌강릉시립박물관 소장)의 서체가 특히 그 독자적 양식이 뛰어나 후대에 이러한 서풍을 따르는 이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사임당 서파’라 했다.


이처럼 일가를 이룬 초서병풍을 가져와 수놓은 자수병풍이 등장하게 된 연유가 궁금했다. 사임당의 초서병풍은 고종 6년(1869)에 최씨 문중에서 수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큰 불이 났다. 그때 당시 주인 최전의 처인 강릉 김씨 부인은 팔십 노구에도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이 병풍을 끌어낸 뒤 숨을 거두었다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집안의 가보를 지켜낸 한 사람의 희생으로 초서병풍은 살아남았다. 또 어떤 연유로 사라질 것을 걱정한 강릉부사 윤종의는 이를 목판에 새겨 탁본으로 만들 수 있게 했다. 그 탁본들로 인해 오늘날까지 이렇게 수놓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1868년(고종5) 윤종의는 사임당의 글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그 글씨를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문을 적었다. “정성 들여 그은 획이 그윽하고 고상하고 정결하고 고요하여 부인께서 더욱더 저 태임의 덕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을 사모하는 마음과 정성스러움 덕분에 이렇게 수려한 자수병풍을 만나게 되었다. 사임당의 작품은 서정성이 강하면서도 섬세하여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를 각각 한 장에 쓴 것으로 뒤에 병풍으로 꾸몄다. 그 시들의 구성이 한편의 그림처럼 기승전결의 구성을 가지고 있어 시를 따라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아름다운 풍광과 만나게 된다. 집안의 고요로부터 마음을 일으켜 산촌과 강마을 바닷가의 풍정을 고루 담아낸 시들을 배열한 그 사임당의 공명(共鳴)이 시 행간을 따라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海岸殘雪(바닷가라 잔설에 밭을 갈다가)/ 溪沙釣夕陽(시냇가서 해질녘 고길 낚지요)/ 家貧何所有(가난한 집인지라 무에 있을까?)/ 春草漸看長(차츰 돋아나는 봄풀 구경하지요.)’ 제6폭/당나라 시인 황보염(皇甫, 714~767) 작.


사임당을 기리는 이율곡의 ‘선비행장’에는 그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천품, 정결한 지조, 순효(純孝)한 성품 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사임당은 7세에 스스로 안견의 그림을 사숙(私淑)하였고, 풀벌레와 매화, 포도, 화조, 난초, 산수 등 다양한 화제에 모두 능했다. 특히 사실적으로 그린 화풍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초충도 그림을 말리려고 내어 놓았는데 닭이 와서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실제 초충도 그림을 따라 그리다보면 여린 듯 생생한 그 느낌을 표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붓을 든 손에 힘을 빼면서도 힘 있는 필세로 섬세한 사물의 표정을 전하는 일은 사임당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현재 사임당의 작품은 40폭 정도 전해진다. 사임당의 예술성에 대해 명종 때의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에서 “안견의 다음에 간다”라고까지 격찬한 바 있다.


사임당은 자수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사임당의 자수 작품은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8폭 전(傳)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이 유일하다.


선비행장을 통해 어머니를 기리는 율곡의 마음처럼 사임당 또한 오랫동안 있던 친정을 떠나 서울과 시가를 오가면서 62세의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와 서울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지은 ‘사친(思親)’ 등의 시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애틋하게 담아냈다. 38세 때의 일이었다.


‘사친’이란 시를 보자. ‘千里家山萬疊峰(산 첩첩 내 고향 천리 머나먼 곳)/ 歸心長在夢魂中(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寒松亭畔孤輪月(한송정 가에 외롭게 뜬 달일세)/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 앞 한 줄기 부는 바람)/ 沙上白鷺恒聚散(모래톱에 해오라비 모였다 흩어지고)/ 波頭漁艇各西東(바닷가엔 고깃배들 이리저리 오가네.)/ 何時重踏臨瀛路(언제 강릉 고향 길 다시 밟고서)/ 綵服斑衣膝下縫(색동옷 입고 어머님 앞에서 바느질 할꼬.)’


애틋한 그리움은 마지막 구절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어머니와 함께 색동옷 입고 바느질 하던 그 기억이야 말로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임을 보여준다.


5월의 향기로운 꽃그늘 아래서 아이와 도란도란 바느질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 또한 그리움의 바다에 젖어 들게 하는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바느질은 조각 천들을 잇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잇고, 마음에 추억의 수를 놓는 일인가 보다.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