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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매화를 보며
작성자 museumsoo
北 최고 자수장의 心中 찌른 곧은 절개 ‘붉은 매화’


매화가 수놓여진 다양한 베갯모.





‘꽃을 사랑한 남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화꽃을 사랑한 남자’라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그 반열에 선 두 분을 꼽으라면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이름난 북송의 시인 임포와 조선의 퇴계 이황 선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임포(967~1028)는 매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은거하며 매화시(梅花詩)만 지었다. 가끔 오래된 벼루장식에서 사슴과 함께 매화와 학이 선비를 둘러싸고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퇴계 선생이 매화를 특히 좋아한 것은 ‘유군자지조(有君子之操)’ ‘유일사지취(有逸士之趣)’, 즉 군자의 지조와 일사(逸士)의 정취를 매화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겨울 이겨내고 봄날 첫 봉오리 피워낸 매화   매화꽃에 투영된 선비 성정·생의 환희·믿음
조선후기 화가 양기훈 그림 ‘매화도’밑그림   北 남성 자수장이 수놓아 완성한 병풍 작품  바늘끝에 담은 붉은꽃잎…맑고 곧은 지조




매화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선생의 병세가 중해지자 문인들이 점을 쳐서 겸괘(謙卦)에서 “군자가 마치는 때가 됐다”라는 괘사(卦辭)를 얻었다. 그때가 신축일(양력 1571년 1월3일) 유시였다. 선생은 이날 아침 모시고 있는 사람을 시켜서 “화분에 심은 매화에 물을 주라” 하였다. 또한 돌아가시기 전에 자작 매화시 91수를 골라 친필로 쓰고 첩으로 만들어 남겼다. 이를 ‘매화시첩(梅花詩帖)’이라 한다. 한수 한수가 주옥같은 매화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첩이다.


물론 지금도 봄날 첫 봉오리를 피워낸 매화를 보기 위해 꽃소식 오는 남으로 길을 떠나기도 하고, 흰 눈을 머리에 이고서도 핀 설중매를 보기 위해 탐매여행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아름다운 꽃의 자태가 보고 싶고, 꽃향기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게 여리고 고운 잎을 내민 매화의 자태와 향은 가슴과 영혼까지 흔드는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달밤에 핀 한 송이의 ‘묵매도’를 한없이 고고하고 청초하게 화폭에 담아 선비의 성정을 드러내었으며, 민화에서는 긴 겨울의 시련 뒤에 피어올린 그 인내와 열정의 정신을 흠모하여 삶의 환희를 화폭에 담았다. 마른 가지 끝에 더 이상 꽃잎들이 들어앉을 수 없을 정도로 총총히 그린 붉은 꽃 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삶의 기나긴 시련의 강을 건너본 사람이라면 그 그림이 열망하는 마음이 전해와서 가슴 한 편이 저려올 것이다. 밝고 화사하며, 터질 듯한 붉은 꽃송이들의 잔치는 역설적이게도 저렇게 간절한 기도가 또 있을까 하고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다. 지난한 민초들의 삶의 방식은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과 찬미의 마음을 담은 민화를 그려내면서 더욱 강건해졌을 것이다. 그 그림은 “쓰러지지 않고 피어야 한다. 이렇게 화사한 꽃처럼…” 하고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림을 보며 용기가 났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선비의 매화부터 민화의 매화, 그리고 자수로 수놓아진 매화가 있다.


매화자수는 규방의 여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 베갯모 수에도 종종 보인다. 작은 꽃잎들을 한 잎 한 잎 실로 피워낸 그 정성 앞에서 가끔 손매가 야무지고 코끝이 단정한 여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 매화꽃 가운데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아름다운 매화꽃수가 있다. 10폭 병풍으로 남아있는데 특이하게도 수의 본(本)을 그린 작가가 밝혀진 작품이다. 조선후기의 화가 양기훈(楊基薰, 1843~1919 전후)의 그림을 자수 밑그림으로 해서 수놓았다. 그 밑그림 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자수 솜씨를 뽐내는 평안남도 안주 지방의 남자 자수장이 수놓아 완성한 병풍 작품이다. 그래서 이 병풍을 만났을 때 그 유명한 자수솜씨를 실제 볼 수 있다는 것과 한 작가의 밑그림으로 3틀의 병풍이 수놓아졌다는 사실에 흥미가 더해졌다. 북한에서는 양기훈이 그린 약 3m의 ‘붉은 매화’ 수묵화 10폭 병풍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2006년 6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전시회에 양기훈의 수묵화가 전시되었다. 조선후기 한양화단의 장승업(1843~1897)과 쌍벽을 이루며 평양화단을 이끌었던 양기훈의 그림을 밑그림으로 한 자수매화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북한 자수를 이해하며 당시 자수병풍의 많은 본들이 유명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사실을 증명해준다.


양기훈의 그림을 밑그림으로 한 자수 병풍은 모두 3점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국립고궁박물관소장 10폭 매화 자수병풍 2점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자수매화도 10폭 병풍이 그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0폭 병풍은 북한자수의 사실적인 기량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 올 한 올 실을 꼬아 핍진하게 대상을 드러내는 자수 기법은 붓끝으로 그려진 그림의 사실적 기법을 넘어서는 섬세함이 있다. 이 놀라운 사실성 때문에 중국의 단둥지역을 통해 북한의 초상자수가 종종 거래되기도 하고 한국의 민화그림들을 북한 자수로 재현한 사실적 민화자수병풍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재현된 자수 민화들은 사라지는 원본 민화의 퇴락과 소멸에 대비해 한국이 민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보존 수단이 되면서 그 자체로 북한자수의 기량과 기법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양기훈의 작품을 밑그림으로 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장 매화자수작품은 매화꽃에 투영된 조선선비의 성정과 민화의 생의 환희에 대한 믿음, 그 경계 사이의 묘한 긴장과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탄탄한 느낌은 꼰사로 꼿꼿하게 꼰실을 사용하고 색채를 단순화한 결과이며, 붉은 매화의 몸은 곧고 당당하게 뻗어있고 연한 가지들은 휘는 듯 파릇하게 꽃을 이고 있다. 멍하게 수를 바라본다. 일순간 실꽃들이 살아 일어서더니 퇴계 선생과 두향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


“나리의 시 중에는 유난히 매화시가 많은데, 그건 어찌된 연유인지요.”


두향의 물음에 이황은 “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 위에서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내지 않느냐. 그래서 예부터 매화는 청고한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일컬어왔다. 또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고 있음을 매화가 앞장서서 알려주니 그 또한 매화의 미덕이 아니겠느냐.…나는 간신의 무리 속에서 바르고 곧음을 지켜내려 할 때마다 늘 매화의 기상을 떠 올리곤 했다.”


‘두향’이라는 소설책을 통해 소설가 박세연이 손끝으로 그린 듯 서술한 생생한 퇴계 선생과 두향의 대화가 향기롭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맑고 곧음을 지킬 수 있는 그 기상이 평안남도 안주의 남자 자수장의 심중을 찔렀나보다. 그 바늘 끝에 담은 뜻이 한 방울의 피처럼 선연해 저 붉은 매화의 몸이 토해낸 꽃잎인들 아름답지 않을까. 고요히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겨운 매화수 앞에 서 있다.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