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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누에 고르던 할머니 냄새와 기억…남루한 보금자리와 살뜰한 삶의 조각
작성자 museumsoo
옛직기 시대순 전시한 상주 ‘허씨비단’ 누에가 고치 만드는 보금자리 ‘잠족’
솔가지섶 등 양잠기술 변모 과정 체험누에 무게 지탱하는 가늘고 얇은 지지대
누에치기 끝난후 해체, 최소한의 구조 고치떡 해먹으며 잘 지어주기를 기원




개량화된 베틀
엄마의 치맛자락 꼭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느라 시장 안의 부산스러운 풍경을 눈에 담을 틈도 없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그래도 엄마의 뒤를 쫓는 것은 추석에 맞춰 옷을 사주시기 때문이었다. 길이도 맞춰보고 색깔도 맞춰보고 하지만, 옷은 늘 몸보다 커서 헐렁했다. 엄마는 곧 자랄 거라고 말하며 꼭 맞는 옷을 사주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 옷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계절보다 두꺼운 옷감 때문에 추석날 입으면 더웠고 큰 치수 때문에 늘 소매는 한단 접어서 입었다. 그래서 크기가 맞을 때쯤에는 옷은 못 입을 때가 된 듯했다.


그래도 좋았다. 긴 듯 짧은 듯 그 세월들은 어느덧 회색빛으로 아득해진다. 그러나 지금도 옷을 사 입히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미소만큼은 눈가에 어리는 눈물자국 안에서도 선연하게 보인다. 가끔은 그때 엄마는 그 환한 미소만큼 정말로 행복했는지 묻고 싶다. 철없는 내 눈에 그렇게 보였던 게 아니었는지.


어깨를 부딪는 좁은 시장골목의 소란스러움과 질척이는 어시장 골목안의 흥정들이 펄떡이는 생선만큼이나 싱싱했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겨웠다.


그렇게 어렵게 사 입을 수 있었던 옷들이 이제는 너무 쉽게 우리 곁에 넘쳐난다. 그 엄청난 변화의 간격만큼이나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은 극명할 것이다.


‘전통이 강한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는 하워드 가드너의 역설이 아니더라도 박물관은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간다. 그 중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의 자산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활동들을 함께 함으로써 잃어버린 우리문화의 일정부분을 다시금 우리의 현재성 앞으로 존재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재속에 묻어둔 알불처럼 남아있는 전통이 있고, 그 불씨들을 지켜가는 일에 온 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힘겨운 날갯짓에 작은 손바람이라도 보탠다면 그것이 작은 물길을 내어 언젠가는 도도히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첫 걸음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는 박물관 친구들의 모습에는 가벼운 기대 때문인지, 홍조를 띤 얼굴이 모두 곱기만 하다. 그들이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전통과의 낯선 만남에서 어떤 경험을 할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상주로 향했다. 잔비가 뿌려 숲은 젖어 있었고 고즈넉한 공기들 때문에 강을 안고 돌아가는 경천대(擎天臺) 주변은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그렇게 그 주위를 둘러보고 예약한 시간에 ‘허씨 비단’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문 앞에 서 있는 허씨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연오랑과 세오녀와도 같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 신라에는 해와 달이 사라져 버렸다. 신라에서 사라진 해와 달을 다시 찾기 위해 세오녀가 짠 비단 천을 바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문화의 근원을 해와 달처럼 섬기며 살고 있는 장인은 그 스스로가 해와 달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정한 웃음과 푸근한 목소리로 지난한 삶의 이력들을 설명해 주었다. 한길로 향한 순수한 집념은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는 버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직기(織機)들과 개량된 직기들이 한 공간에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 벽면에는 누에섶이 걸려 있었다. ‘잠족(蠶簇)’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누에가 고치를 만들기 위해 깃드는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다. 눈에 익은 섶도 보였지만 일찍이 보지 못했던 초기의 섶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솔가지섶에서부터 다양한 섶들이 양잠기술의 변모된 과정들을 보여주었다.


전시장 건너편에는 잠실(蠶室)이 있었다. 허씨 비단의 잠실은 1959년 영천에서 건립된 것을 이전해 복원한 것이라 한다. 잠실 앞에는 오래된 뽕나무들이 보인다. 베어지고 사라지기 직전에 각지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옛것들을 보존하여 남겨놓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토담으로 만들어진 옛 모습을 간직한 잠실에 들어서니 누에를 고르던 할머니의 냄새가 잠시 코끝을 스쳐갔다. 그랬다. 잃어버린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들이 안고 있던 따스함들이 잠시 가슴을 다독이면 들어 앉는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벽을 바라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섶을 올려두던 낡은 나무지지대가 그렇게 가늘었는지 깜짝 놀란다. 그때는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저 지지대들이 가늘고 얇지만 섶의 무게와 누에의 무게들을 지탱했고 우리의 삶을 꾸려왔던 살림이었던 것이다.


누에치기가 끝나면 다시 해체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구조물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루해 보이지만 깨끗했고 살뜰했던 삶의 조각들이 보였다. 누에가 섶에 오를 때에는 고치떡을 해먹으며 누에를 향해 고드레 돌처럼 딱딱하게 잘 지어 주기를 빌었다고 한다. 책장의 갈피마다 책갈피를 꽂듯 그렇게 의미를 반추하고 함께 기억했던 모습들이 보인다. 모든 일상이 소중했고 모든 일상이 최선이었던 시간들 속에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기억들이 이렇게 불현듯 떠오른다. 박물관 친구들은 또 어떤 추억들을 기억으로 건져 올렸을까? 각자의 가슴속에 옛것과 오늘의 시간을 관통하는 향기 하나쯤은 품고 왔을 터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8월 허씨 비단 직물은 30년 이상 전통산업을 영위하는 사업체로서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되고 또 한편 복원된 잠실은 ‘산업유산’으로 각각 지정되었다고 한다. 작은 불씨 하나가 꺼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큰 불꽃을 만들어 낸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에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16일부터 날마다 육부(六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8월15일에 이르러 그 길쌈의 길고 짧음을 살펴서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를 행한 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언젠가는 이런 길쌈의 풍습을 재현하는 축제가 상주 골에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허난설헌의 한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길쌈하는 옛 여인들을 추억해 보았다.


貧女吟 (빈녀음) 가난한 집 처녀의 노래/ 허난설헌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손에 가위를 들고 바느질을 하는데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추운 밤 손 시려 펴지질 않는구나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남에게 줄 신부 옷을 지으면서도


年年還獨宿(연년환독숙) 해마다 자신은 되레 홀로 지내는데.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