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수
| 로그인 | 회원가입

home 자료실> 자수이야기
조회수 268
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재봉틀을 바라보며(영남일보)
작성자 museumsoo
여리면서도 강한 어머니의 모습 닮아
 

 

 

재봉틀로 만든 옛날의 베개들. 베갯모에 있는 아름다운 꽃수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박물관 수 제공>

오후 3시의 시간은 놀이터의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듯 하루를 숨 가쁘게 마무리해 가는 정점의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조금 숨을 돌려 하루의 일을 정리하다 보면 3시는 안도감과 묘한 긴장감을 준다. 비가 차분히 땅을 적신 봄날 3시쯤에 한 여성이 박물관을 찾았다.

가득히 쌓여 있는 자수 베개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듯 서있었다. 빗소리가 투명한 천장을 두드려 단단히 닫아두었던 마음이 스르르 열리고 말 것 같다. 그녀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차 한 잔을 우려 그녀에게 전한다. 차는 막 새순 오른 잎이 담긴 듯 맑은 빛으로 가라앉아 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에 천천히 그녀는 말을 옮겨왔다.

오로지 여인들의
길쌈에 의지해
천 만들고 염색
하고 옷 짓던…
그 노동 대신한 재봉틀은 신세계

시집갈때 혼수로 해가는
재산 1호이기도

어머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한벌의 옷
그녀가 돌아가신 뒤
조금씩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
살아온 흔적과
그 흔적들 속 삶의 가치…
기쁨과 슬픔 가득 서려있어

“엄마가 생각나서 자수박물관을 검색해서 왔어요. 엄마는 제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지요.” 무엇인가를 추억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한 40대 초반의 그녀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어머니는 솜씨가 남달랐어요. 다른 형제들이 모두 학교를 갔지만 딸이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는 대부분 그랬지요. 지금은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요.”

어머니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고 그래서 겨우 허락을 받아 한복봉제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학교를 갔다 오면 그녀의 어머니는 옷본들을 방에 가득 펼쳐놓은 채 열심히 바느질을 하셨고 그 곁에서 그녀는 옷본에 가득 쓰인 숫자들을 비밀의 열쇠를 여는 암호처럼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행복했던 한때의 모습들이 차향처럼 공간을 물들일 때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어머니의 손끝에서 한 벌의 옷이 만들어졌지요. 한복 본들은 아주 다양했는데 어머니는 귀신처럼 그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본들과 엄마가 만든 물건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 재봉틀 한 대가 남았지요. 조만간 친정에 가서 가지고 오려고 해요.”

그녀는 어머니를 추억할 유일한 물건이 어쩌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단다. “제가 어린 탓에 소중한 것을 챙겨놓을 생각도 못했고 이제 돌아보니 많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녀의 속내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고 말없이 듣고 있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를 거들었다. “잘 챙겨두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소중한 자료들이 되었을 텐데 말이지요.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온 흔적과 그 흔적 속에 담긴 삶의 가치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그 말에 그녀의 눈빛이 한순간 강하게 빛이 났다. “갈 때마다 어머니의 유품들이 사라졌어요. 너무 일찍 먼 길을 떠난 며느리가 야속했는지 할머니는 갈 때마다 어머니의 흔적을 지우고 계셨습니다.”

잠시 가볍게 명치끝이 아파왔다.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일순간 그녀의 눈에서 반짝였던 것은 눈가에 번진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곧 재봉틀을 잘 갈무리해서 가지고 와야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 박물관 한편에 있는 재봉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래된 재봉틀의 깊은 나뭇결, 곡선인 듯 유연하면서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어쩌면 여린 듯 강한 어머니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여인들의 길쌈에 의지해서 천을 만들고, 염색하고, 옷을 지어야 했던 시절에 바느질은 노동이었고 그 노동을 대신할 재봉틀은 신세계였을 것이다. 그런 만큼 재봉틀의 가격은 매우 비쌌으며 그 재봉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나의 어머니도 시집올 때 재봉틀을 혼수로 해 오신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어릴 적 할머니댁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쌀 뒤주와 함께 자리잡고 있었던 재봉틀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해온 것이다.

예전 한 작은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80세 되신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할머니에게도 재봉틀은 재산 1호였다.

“시집올 때 재봉틀을 해 왔지. 그 재봉틀은 아주 비싸서 당시 땅 3마지기의 값을 치르고 사올 수 있는 것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가격이지. 아무리 꼭꼭 숨겨두어도 집이 불타버린다면 그 불꽃 속에서 견딜 수가 없을 테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이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 전쟁통에 무거워서 지고 갈 수도 없는 재봉틀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 고민 끝에 한번 탄 재는 다시 불꽃이 붙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러 아궁이에 넣어 재로 깊이 재봉틀을 묻었어. 그리고 피란을 갔다가 전쟁이 끝나 고향에 다시 돌아와 보니 재봉틀이 그대로 아궁이에 잘 묻혀 있는 거야. 얼마나 기쁘고 그 재봉틀이 고맙던지….”

그 이후로 할머니는 그 동네에서 마을 사람들의 예단이불이며 혼수로 사용할 한복을 해 주는 일로 쏠쏠한 수입이 생겨서 아이들도 키우고 이제껏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머니들에게 재봉틀은 육체적 노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봉틀을 통해 삶의 길을 찾고 그들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을 돌릴 때마다 단단하고 견고하게 매듭지어지는 그곳에는 어머니들의 슬픔과 기쁨이 가득 서려 있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장미꽃이 향기로운 5월이다. 동양에서는 장미를 ‘장춘화(長春花)’라 했는데 이는 영원한 젊음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끊임없이 피고 지는 장미의 모습을 보면서 영원히 젊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베개 수를 놓았다. 나도 오랜만에 재봉틀 앞에 앉아 한 송이 장미꽃을 만든다. 자신의 몸까지 내주는 헌신과 순종의 삶을 살았던 이 땅 어머니들의 그 영원한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서. 박물관수 관장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