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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자수박물관
등록일 2018-06-29
대구 아낙네들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日 기모노 자수
 


 


박옥선 할머니가 기증한 일본 기모노 자수와 유물

 

 


 사전박물관의 고(故) 허동화 관장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

 

가벼이 와서 가벼이 떠나는 삶이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죽음은 아무리 준비하고 있어도 느닷없는 것이 되고야 마는 법이어서 사람들은 명치끝의 깊은 곳에서 오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사전(絲田)박물관의 허동화 관장(92)의 부음을 들으니 슬픔과 많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작은 자수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수유물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허 관장의 발자취는 존경의 대상이 됐고 사전박물관의 방대한 도록과 출판물은 자수의 세계를 알려주는 교본이 됐다.

그 뒤에 본격적으로 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서울의 한국자수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다. 부인 박영숙 원장의 치과 옆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었다. 관람객의 인기척이 나자 병원의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안내해 줘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한 점 한 점 소중한 자료들로 가득한 것을 느꼈다. 많은 출판물이 한편에 전시되어 있었고 국내외에서 100여 차례 기획전을 통해 한국 자수의 아름다움을 알린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사전(絲田)박물관 故 허동화 관장
보자기·복식·침선 도구 수만점 수집
서울시에 5천점 기증, 韓 자수미 알려
낡고 사소한 것에 불어넣은 사랑·생명
숭고하고 아름다운 옛 여인의 이야기


박옥선 할머니
수실과 본 등 70년대 사용 물품 기증
삼덕동 일대서 日 기모노 자수 수출
집집마다 일감 나눠 자식들 다 키워
韓·日 자수 차이 비교, 소중한 자료

국보급 유물이 전시된 전시실의 한쪽에는 한옥으로 설계된 미래 자수박물관의 청사진이 크게 걸려있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지금 그분의 부음 앞에서 살아생전 그토록 염원하던 그 박물관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분이 수집한 자수병풍과 보자기, 자수공예와 복식, 침선의 여러 도구들은 수만점에 달한다. 그중 5천여 점을 지난 5월 서울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 수집품은 그저 하나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 여성의 삶의 모습과 철학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이기에 그 많은 유물들이 제대로 조명될 수 있는 공간을 오랫동안 염원해 오셨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2010년 박물관 수를 개관한 뒤 같은 관장으로서 행사 때마다 그분을 뵐 수 있는 것이 좋았다. 2013년 그분의 작품평을 쓰기 위해 찾아뵈면서 하루종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은 유물 중에는 보물 제653호인 ‘자수 사계분경도’, 국가민속문화재인 ‘운봉수 향낭’ ‘일월수다라니주머니’ ‘오조룡 왕비 보’ 등이 있다. 이처럼 많은 유물 중에서 가장 아끼는 유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가장 잘 모았다고 생각되는 유물이 바로 부인이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자신이라고 답하셨다. 이제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수를 놓고 조각보를 만든 옛 여인의 마음과 허 관장이 서로 소통하는 정신적 지점은 낡고 사소한 것에도 한없는 존귀함과 사랑을 부여하며 그 속에 삶의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것에 있다. 일일이 자수유물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는 옛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 마음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못에 고기와 새가 함께 살고 있지요?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요? 그리고 꽃이 핀 매화나무 가지에 색동옷을 입혔어요. 비록 꽃이지만 추위에 산고의 고통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색동옷을 입힌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보이지요.” “미국의 색채학자가 자수박물관의 유물을 둘러보면서 한국의 색채는 세계최고의 색채라고 말했지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명이었다.

수를 놓은 옛 여인들의 삶도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여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자수를 반백년 지켜온 그의 삶의 모습도 얼마나 숭고한 사명감으로 가득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떠났다. 아직도 듣고 싶은 이야기와 배워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훌쩍 떠나셨다. 우리 곁에는 이렇게 미처 다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남겨둔 채 홀연히 떠나시는 분들이 많다. 2013년 봄, 박물관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바쁜 할머니(박옥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곧 대구를 떠나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하니 집으로 급히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도 몇 차례나 자수박물관을 보고 싶다는 전화를 한 적이 있는 할머니였지만 모시질 못했다. 황급히 방문한 집은 이사를 위해 정리 중이어서 어수선했지만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은 자수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셨다. 수놓다 만 수실과 본들이 있었는데 1970년대에 사용했던 귀한 자료였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일본의 기모노를 만들기 위한 자수였다. 어떻게 이런 자료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 할머니는 대구 삼덕동 한옥에서 자수가내수공업을 했고 여러 집에 일감을 나눠주고 일본자수를 가르쳐서 기모노 만들 때 쓰는 수를 수출했다. 그렇게 해서 자식을 모두 키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사업이 괜찮아지니 다른 사람들이 뛰어들어서 일본 거래처에 더 낮은 가격에 수출하겠다고 해서 거래가 끊겼지. 그 때문에 많은 자수공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고, 삼덕동 일대에서 하던 자수사업을 그만두게 됐지.” 그러나 수출한 다른 자수공장의 수가 엉망이어서 그만 일본으로 보내는 수출 자체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지금 그 수들은 일본인이 오면 좋은 관람 자료가 된다. 한국과 일본 자수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일본 기모노의 아름다운 자수가 대구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란다.

2020년에 완공되는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 자리에 세우는 서울공예박물관에 그가 기증한 5천여점의 소장 유물들이 전시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이루고 가꿔온 족적에 맞는 그의 이름으로 된 자수박물관이 있으면 좋겠다. 허 관장이 모은 이 유물을 통해 말해주고 싶은 것은 아름다움의 본질은 사랑이며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는 그의 신앙을 잘 드러낸 전시장이었으면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쇼오쿠 태자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염원해 제작된 천수국만다라수장은 고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수다. 이 수는 고구려, 가야, 신라의 화공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수를 놓았다. 최근 천수국만다라수장의 수를 복원한 것은 한상수 자수장으로 한상수박물관 관장인데 이분도 2016년 81세의 나이로 고인이 되셨다.

박물관 수 관장

<사진=박물관 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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