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수
| 로그인 | 회원가입

home 자료실> 자수이야기
조회수 633
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8월의 연꽃
작성자 museumsoo
부부의 사랑·평안 염원한 ‘베갯모 연꽃 수’
 



 

8월의 연꽃은 환한 보름달을 교교히 품고, 반짝이는 별빛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품기도 한다. 아래로는 깊은 진흙 속에 뿌리를 담그고 있으면서도 위로 향한 넓은 잎들의 울울한 모습과 시원스러운 꽃잎의 미소가 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그 너울대는 푸른 잎들과 붉고 흰 꽃잎들의 활기 때문에 연못은 한바탕 소란스러운 잔치를 열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찰나에 비라도 내린다면 연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는 듯 때로는 비통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울려 퍼진다. 깊은 진흙의 어둠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연은 그 깊이만큼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연꽃의 이야기는 가까이로는 여인들이 수놓았던 어여쁜 베갯모 자수로 남아있으며, 조선시대 민화에도 보인다. 특히 선비들이 그린 묵향 가득한 연꽃은 선비의 도덕적 품성을 표현하는 화재로 사랑받았다. 고려시대의 불화에서 연꽃은 망자의 모든 영혼이 들어가 다시 화생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담았고, 고구려의 연꽃에서는 아름다운 팔메트 문양과 함께 그려진다.

진흙에 자라도 속세 물들지 않은 청정
선비 도덕적 품성 닮은 ‘꽃중의 군자’
고려 불화, 망자영혼 화생 기원 모습
이집트·인도, 태양 신·풍요의 여신
연꽃 환생하는 심청, 만물의 생명성
쌍쌍의 오리와 연꽃 가득한 베갯모
실 한올 한올, 영원 향한 여인의 마음


 


조선 후기 민화인 ‘연화도’.
멀리 고대의 이집트에서 연꽃은 어떤 모습일까? 내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사자(死者)의 서(書)’에서 태양에서 나온 가장 순수한 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태초에 이 세상에는 물만 있었는데 그 물 속에서 연꽃이 피고 그 연꽃 위에 태양신이 살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태양신 네페르템은 밤이면 태양이 숨는다는 연꽃에서 매일 새벽 새롭게 태어나 ‘연꽃의 신’으로 불렸다. 또한 일몰 직후 활짝 피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오므라드는 백련화는 하계(下界)의 밤을 통과하여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돌아와 태양을 관장하는 신인 오시리스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하는 오시리스에게 바쳐진 제물 위에는 언제나 연꽃 다발이 놓여있었는데, 이것은 재생과 부활, 창조를 상징했다. 이집트에서 때로는 연꽃이 물고기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태양의 딸이자, 달과 다산을 상징하는 이시스 여신이 물고기로 변신하였기 때문이다. 즉 재생과 부활, 창조의 추상적인 가치개념의 현실적 실현은 다산이므로 물고기의 다산성의 이미지를 이시스 여신과 결합시켰다. 우리나라의 민화에서도 물고기가 다산성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세기경 인도에서도 아잔타 석굴 벽화에는 인도가 원산지인 홍련과 이집트의 수련을 함께 들고 있는 아름다운 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특히 고대 인도에서는 아리아 민족이 이주하기 이전의 선주민(先住民) 신화에서 태양과 관련하여 연꽃에 대한 숭배가 나타난다. 이후 힌두교와 관련하여 태양신(Surya)의 소유물 중의 하나가 연꽃이다. 또한 태양이 변해서 된 창조주(Vishnu)의 배꼽에서 나온 연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잉태하는 상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에 이집트나 인도에서 연꽃은 모두 태양신과 함께 인식된다. 인도에서 독특한 점은 ‘리그베다’에 부가된 외전송가(外傳頌歌)에서 풍요의 여신 락쉬미가 언제나 연꽃과 함께 나타난다. 발홋의 기둥 부조에 형상화된 그녀는 화병의 연꽃 위에 서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풍요의 여신과 결합된 연꽃은 풍요와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에서 모란이 풍요를 기원하는 꽃으로 이해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이집트 나일강의 수련과 인도의 홍련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어 4세기경 세계 문화의 교류를 연꽃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인도에서 연꽃은 뱀이나 악어와 같은 동물 형태와 함께 그려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주로 발홋과 산치 등 불교 미술 초기 단계의 스투파의 난간 석주에 조각되어 있다. 연꽃이 지닌 창조적 에너지를 다른 동식물 문양의 힘에 의해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독특한 조형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 사찰의 궁창부에 용이 연꽃을 입에 물고 있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고려불화에서는 당초 문양과 함께 결합되어 연꽃이 지닌 무한한 창조력을 동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스로 움직여 회전함으로써 태양과 같은 존재로서 만물의 생명성을 확장시키는 연꽃의 화생성에 대한 이미지는 심청전의 백미를 장식한다. 폭풍우와 같은 재앙이 닥치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순결한 처녀 심청이 재물로 바쳐지지만 심청은 연꽃에서 환생하게 된다. 이처럼 연꽃의 환생은 종종 상여 장식의 연꽃나무판에서 사람 얼굴이 쏙 올라오는 장면으로 그려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연꽃은 또한 조선의 선비들에게서 매우 사랑을 받아왔는데 그것은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덕분이다.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菊花之 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진흙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속세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이 선비가 지향하는 도덕적 품성을 닮아

                                                                                  있어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연꽃은 여인에

                                                                                  게 있어서 무엇이었을까?


 

근대에 제작된 연화문 베갯모와 조선 후기의 연꽃 자수 베갯모(맨아래).

베개의 양쪽 모서리를 감싸는 베갯모에 연꽃수가 가득 놓여있다. 자수 베갯모의 연지(蓮池)는 쌍쌍이 마주한 오리와 활짝 핀 연꽃으로 가득 차 있다. 수런수런 연잎이 부딪는 소리와 오리들이 연못의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 연지에 떠있는 오리들은 이규보(1168~1241)의 시처럼 정스럽고 다정하다. 연꽃의 연(蓮)과 이을 연(連)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베갯모의 연꽃 수는 부부의 사랑과 평안함이 영원하길 염원하고 있다.

“봄을 맞아 파란 못에 비단 깃 펼치고 온종일 나란히 떠 떨어질 줄 모르네.”

밤마다 이루는 잠 속에서, 은하수를 건너는 견우와 직녀처럼 영원히 사랑하기를 염원하였던 여인들은 한 올의 실에 영원으로 향한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영원을 향한 그 시간들은 한 올의 실로부터 풀려나와 강물처럼 흘러간다.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