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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자수에 스며든 인문 정신
작성자 museumsoo
자수병풍에 수놓은 덕목…분수 헤아리며 살아가는 선비의 마음
병풍에 수놓여진 다양한 자수들. 다채로운 문양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스며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왕조와 함께한 자수에 대한 기록이 흥미롭다. 자수에 대한 기록은 일곱 차례 정도 언급된다. 그중 문종 즉위년 경오(1450년) 2월28일의 기록이다.

“대행왕(大行王)이 훙서(薨逝)하던 저녁에 후궁(後宮)으로서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된 사람이 대개 10여 명이나 되었다. 각궁의 자수(刺繡) 잘하는 사람을 내전(內殿)에 모아서 부처를 수놓게 하고, 또 밖에서 공장(工匠)을 모아서 불상(佛像)을 만들게 하고, 중의 무리로 하여금 그 일을 주간(主幹)하게 하였다.”

왕이 돌아가시던 날 저녁에 후궁 10여명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 각궁의 자수를 잘하던 사람들은 모두 내전에 모여서 소복을 입고 소임에 따라 부처본을 그리고, 수놓을 비단을 마련하고, 실을 만들어 부처를 수놓고 있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붉은 비단조각에 화려한 비단실들을 꼬아 금사나 은사로 징금하여 부처를 수놓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상중의 일과는 무관하게 그 정경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했을 것이고, 정성 가득한 손길로 망자를 위한 수를 놓았을 것이다.

제사 병풍, 망자의 넋 넘어오는 공간
화조도 병풍, 꽃과 새 충만한 생명력
혼례 모란자수병풍, 새날의 풍요 기원

소박한 인문정신·절제된 조형미 조화
곁에 두고 마음에 새기며 근본 실천

 

순종 4년(1911) 4월27일에는 “한성고등여학교(漢城高等女學校)에서 동교(同校) 졸업생도(卒業生徒)들이 만든 작품 중 앵두나무 조화분재(造花盆栽) 1발(鉢), 자수비돌(刺繡臂突) 1개(箇), 자수견(刺繡絹) 1매(枚)를 진상(進上)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성고등여학교는 현재 경기여고의 전신이다. 그 졸업생들이 수놓은 작품 중에서 앵두 나무 조화분재, 자수비돌, 자수견을 특별히 뽑아서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기록은 무너져 가는 왕가의 뒤안길에도 자수가 진상되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애잔한 정경으로 다가온다.

몇 년 뒤 순종 8년에는 “고노 히로나카(1849~1928, 1914년 오쿠마 내각에서 농상무상을 역임)가 순종과 고종에게 자수 병풍을 각각 한 틀씩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농림부 장관이었던 고노 히로나카가 일본수를 놓은 자수병풍을 선물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병풍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아마도 자수 병풍을 선물했을 것이다. 이미 주권이 넘어가버린 나라의 왕에게 바쳐진 병풍이 어떤 수였는지, 그 병풍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병풍을 받은 왕의 심경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병풍은 매우 은유적인 공간이다. 극단적으로는 병풍 앞에서 태어나고 병풍 뒤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병풍은 공간의 경계이면서 현실의 장면을 다른 장면으로 전환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의 역할을 해왔다. 제사를 지낼 때는 망자의 넋이 건너오는 공간이 되고 안방에 펼쳐지는 화조도 자수병풍은 그 꽃과 새의 생동감으로 안방을 삶이 충만한 생명의 공간으로 변신시킨다. 혼례에 쳐 둔 모란자수병풍은 태양처럼 빛나는 신랑과 신부의 새날이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무대가 되었다. 이러한 자수병풍 중에 특별히 인문의 향기가 가득한 10폭의 자수병풍 한 틀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그 단아한 자수의 모습과 내용이 창호지에 스며들었을 겨울한기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따뜻한 병풍이었다. 그 구성이 독특한데 화조화만으로 수를 놓은 것이 아니고 열 폭 가운데 처음과 끝 폭은 오언(五言)으로 된 시구를 붉은색 비단에 남색 실로 수놓은 것이었다.

“納稼享先祖(농사 지어 선조께 제사 지내고)/ 買書敎子孫(책을 사서는 자손을 가르친다) 言忠行篤敬(언행을 충성스럽고 미덥게 하면)/ 吉慶自盈門(경사가 집안에 가득하게 되리니)”.

이 병풍을 곁에 두고 늘 마음에 새기며 사람살이의 근본을 지키고자 했던 선비의 마음이 와 닿았다. 특별히 끌리는 시구는 ‘매서교자손(買書敎子孫)’이라는 대목이었다. ‘납가향선조(納稼享先祖)’, 즉 ‘농사 지어 선조께 제사 지내고’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지만 책을 사서 자손을 가르치는 일을 더 소중한 덕목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글귀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가운데 폭에 붉은 비단 바탕에 학이며 매화, 붓꽃, 목단, 등꽃, 국화, 대나무를 수놓았다. 그 구성을 보면 단조로운 색감과 절제된 구성 때문에 더욱 격조가 느껴지는 수이다. 한 집안을 꾸려나가는 선비의 꾸밈없이 소박한 인문의 정신과 절제된 화조도의 조형미가 안과 밖에서 향기로운 부부의 모습을 보는 듯 아름답기 그지 없다. 자수의 한 폭 한 폭이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며 삼가는 마음이 느껴져서 펼쳐둔 그 정경이 지금도 향기로운 듯하다. 한땀 한땀 정성을 다하여 수를 놓은 그 여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두보(杜甫)의 동지시(冬至詩)에 “愁日愁隨一線長…”라는 시구가 있다. 동짓날에는 해가 길어져서 자수(刺繡)하는 여인이 일선(一線)을 더할 수 있다고 한다. 수를 놓기에는 동지의 긴 밤도 짧게만 느껴졌을 옛 여인들의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과 겹친다. 늘 다섯 형제를 보듬는 일에 어머니의 곁에는 바느질감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구멍 난 양말은 동그란 전구알과 함께 놓여있었고 무릎이 해진 내복들이 차례로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던 시간들…. 바쁜 김장을 마치고 겨울 준비는 도톰한 솜이불을 만드는 일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흔한 고무장갑 조차 없었던 시절, 고운 꽃수를 놓기에는 너무 거칠어져 버린 어머니의 손이었지만 바늘은 여전히 어머니 곁에 있었다. 이불은 방안 가득 펼쳐지고 어린 내 손도 이불의 양끝을 잡아서 평평하게 하는 일에 소용이 되었다. 때로는 어깨가 저려올 때까지 실을 감는 일을 도와야 할 때도 있었다. 그 지루한 준비가 끝나고 반듯하게 펼쳐진 솜이불의 깊이까지 바늘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도톰한 새 솜의 부드러운 감촉에 어느새 이불 한끝자락에서 잠이 들고 말았던 시간들…. 그 솜을 만지며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지만 추위를 막아줄 이불을 꿰매던 그 긴 바늘의 확고한 믿음과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