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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해와 달을 대신한 한필의 비단
작성자 museumsoo

한복에서 찾는 한국인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신

전통적인 복식도 시대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되었다.
 
날이 풀리자 할머니는 제일 먼저 양철로 된 통에 빨랫감을 가득 넣어 이고는 동네 앞을 흐르는 시냇가를 찾았다. 겨울 동안 찌든 때들이 할머니의 방망이에 두들겨지고 양잿물에 한풀 한풀 벗겨져 맑은 물소리와 함께 본래의 소색(素色)으로 돌아왔다. 살얼음은 얼었지만 무명옷들은 흐르는 물속에서 너울춤을 추었다. 토실하게 버들강아지는 피었고, 그 보드라운 순을 따면서 높은 바위까지 아장아장 걷다가 그만 바위 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린시절 어미닭의 날갯속 찾아들 듯
할머니의 봉긋한 치마품은 마법 공간
솔기 터진 무명치마라도 따뜻한 기억

조선시대 선비 정신 깊이 표상 ‘深衣’
손의 작은 동작도 절제하는 넓은 소매
원·청 복식, 고려·조선 풍속으로 고착
시대흐름에 따라 전통적 복식도 변화

 

검은 바위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할머니가 빨래하는, 물소리와 방망이 소리·펼쳐진 옷가지들이 어린 눈에 생기 가득한 축제처럼 펼쳐졌고 그 찰나에 물속으로 빠졌다.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할머니의 넓은 치마폭에 둘러싸인 채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젖은 어린 것을 치마로 감싸안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지금도 그 생각에 가슴이 시큰거린다. 그래서 한복을 생각하면 고운 물색에다 비단실로 수를 놓고 넓거나 좁아지는 오지랖이나 도련을 따라 흐르는 우아한 곡선보다는 그 넉넉한 치마품이 생각난다. 그 넓은 무명치마는 모깃불을 피우고 마당의 평상에 누웠을 때에도 이불처럼 감겨있었고 부채를 부쳐주며 “요즘은 살기가 참 좋다” 하시던 고운 목소리와 함께 있었다.

 

마치 병아리가 어미닭의 날개 속으로 찾아들듯 어린시절 할머니의 치마품은 마법의 공간이었다. 다시 도시로 나가는 손녀의 용돈도 그 치마 한 자락에서 꼬깃꼬깃 접힌 채로 나왔으며, 동네 아이들과 놀다 울며 들어가는 그 서러운 시간의 눈물도 쓱 닦아주셨다. 이처럼 내게 한복의 기억은 바람을 머금은 듯 봉긋한 치마품의 아름다운 선과 색감보다는 솔기가 터진 무명의 치마지만 따뜻했던 할머니의 온기로 기억된다.

그 마법 같은 옷에 대한 기억은 좀더 자라서 안데르센 동화책에 나오는 백조왕자의 이야기 ‘The Wild Swans’로 전이된다. 오빠들을 위해 손끝에 피를 흘리며 짠 쐐기풀 옷, 한마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오로지 침묵 속에서 일념으로 짠 그 옷이 백조가 된 오빠들의 마법을 풀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공주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창살 안에서도 줄기차게 쐐기풀 옷을 짠다. 마음 졸이며 공주가 빨리 옷을 마저 다 짜기를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쐐기풀 옷은 백조가 사람이 되는 마법의 순간에 필요한 도구가 된다.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조선시대의 ‘심의(深衣)’가 선비의 정신적 깊이를 잘 표상하듯이 옷은 정신을 드러낸다. 가끔 바람도 맴돌아 나가는 그 넓은 소매는 손의 작은 동작도 절제하게 한다. 정신적 지향성에 따라 옷은 달라지고 때로는 그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한동안 서울의 서촌과 북촌의 관광객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한복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되었다. 지나치게 복식의 전통성이 변형된 옷을 입은 관광객들에 대해 고궁에 무료입장을 할 수 없게 한 종로구청의 방침이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전통한복이고 어디까지가 근거 없는 한복인지에 대한 토론은 뜨거웠다. 재미있는 것은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제자로 통역관 업무에 종사했던 이가 그간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그 서문을 부탁해서 써준 ‘자소집서(自笑集序)’에 오늘날과 비슷한 풍정이 그려진다.

그는 문장을 논하면서 대뜸 당시 부녀들의 복식 문제를 언급했고 그 예로 끌어온 것이 기생들의 복식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대부가의 부녀 역시 기생들의 복식(復飾)에서 그 고유한 전통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습관이 오래되면 본성이 되는 법이다. 세속에서 습관이 되었으니 어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부인들의 의복이 이 일과 매우 비슷하다. 옛 제도에는 띠가 있으며 모두 소매가 넓고 치마 길이가 길었는데, 고려 말에 이르러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든 왕이 많아지면서 궁중의 수식(首飾)이나 복색이 모두 몽골의 오랑캐 제도가 되었다. 그러자 사대부들이 다투어 궁중의 양식을 숭모하여 마침내 풍속이 되어 버려 300~400년 된 지금까지도 그 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 저고리 길이는 겨우 어깨를 덮을 정도이고 소매는 동여 놓은 듯 좁아 경망스럽고 단정치 못한 것이 너무도 한심스러운데, 여러 고을 기생들의 옷은 도리어 고아한 제도를 간직해 비녀를 꽂아 쪽을 찌고 원삼에 선을 둘렀다. 지금 그 옷의 넓은 소매가 여유 있고 긴 띠가 죽 드리워진 것을 보면 유달리 멋져 만족스럽다. 그런데 지금 비록 예를 아는 집안이 있어서 그 경망스러운 습관을 고쳐 옛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더라도, 세속의 습관이 오래되어 넓은 소매와 긴 띠를 기생의 의복과 흡사하다고 여기니, 그렇다면 그 옷을 찢어 버리고 제 남편을 꾸짖지 않을 여자가 있겠는가.”

 

원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다시 명나라에서 청나라로의 중국 왕조 교체기에 고려와 조선은 홍건적의 난과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을 혹독하게 겪었다. 이는 궁중은 물론 백성들의 의식주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원나라의 복식과 청나라의 복식이 자연스럽게 고려와 조선의 풍속으로 고착된 것이다. 옳고 그름을 심도 있게 따지지 못한 채 그대로 휩쓸려 추종하고 만 것이다.

연암은 이러한 풍조를 “습관이 오래되면 본성이 되는 법이다(習久則成性)”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무서운 것은 바로 “俗之習矣 其可變乎哉”, 즉 “세속에서 습관이 되었으니 어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연암 박지원은 뒤늦게 이를 자각해서 아무리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미 대부분이 습속이 된 상태라면 바꾸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들어 시대 풍조를 개탄하고 있다.

반갑게도 최근 ‘한복인문학사전’이 경북도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의 발간은 한국인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정신성을 한복에서 다시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박물관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