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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남일보]나만의 名品을 만들어쓰는 사람들
나만의 名品을 만들어쓰는 사람들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보석 브랜드 ‘티파니’의 보석가게 앞에서 진열된 보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광고에서도 그대로 재연돼 익숙한 이 장면은 여성들의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동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 보석에 대한 동경은 단순히 보석을 가지고 싶다는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까지 함축하고 있다. 명품이 상류사회의 진입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품의 원래 의미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나 훌륭한 물건이다. 이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이 아니라 하나하나 사람의 손에 의해 공들여 만들어진 귀한 물건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명품을 가방이나 옷 등에 한정 지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주로 해외에서 들여온 유명브랜드의 제품이나 고가의 제품을 가리킨다. 하지만 외국에서 명품브랜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의 손에 의해 탄생된 좋은 품질의 제품이다.
 
1980년대 해외브랜드 급속 확산에 따라
과시적 소비경향으로 왜곡된 명품 인식
줄곧 ‘명품=수입 高價 제품’으로 여겨져
도 넘은 명품 집착 ‘짝퉁시장’까지 양산
명품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최근엔 박물관수 규방공예강좌 등 인기
돈의 가치 넘어선 의미 담은 소품 제작
자신만의 개성 살리고 희소성까지 매력
 
◆진정한 명품이란

명품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어디에도 ‘비싼’이란 수식어는 없다. 또 흔히 명품을 해외 유명브랜드의 제품이라 생각하는데 사전에는 ‘해외’라는 단어 역시 붙지 않는다. 명품은 비싼 것도, 해외의 유명브랜드 제품도 아닌 것이다. 값은 비싸지 않더라도 오랜 세월을 두고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손때가 묻을수록 빛을 발하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또 세상에 단 하나뿐이거나 몇개 되지 않아 희소성이 있는 것,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개인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것 등도 명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명품은 값을 떠나서 자신과의 소중하고 특별한 관계를 통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큰 가치가 생성돼 있는 것이다.

살림출판사가 펴낸 ‘패션과 명품’이란 책에서는 명품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명품 패션브랜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의 손에 의해 탄생된 상질(上質)의 제품으로 고객에게 지속적인 신뢰와 만족을 준다.” 명품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고수되는 질 높은 제작공정과 소량생산의 원칙을 가지고 만들어낸, 장인정신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경향이 나타나면서 명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왔다. 1980년대부터 명품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이맘때부터 명품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말 서울지역 백화점에 버버리 등 해외브랜드가 속속 입점하고 뒤이어 90년 서울 갤러리아백화점에 명품관이 들어섰다. 이에 질세라 루이뷔통코리아, 샤넬코리아, 프라다코리아 등이 국내에 둥지를 틀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 브랜드가 명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고, ‘명품= 외국에서 수입된 고가의 제품’이란 등식이 성립되었다.

비싼데도 불구하고 명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은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 동료나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투자할 가치가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할 만한 것이 바로 명품이란 설명이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주위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명품 구입으로 자신이 추종하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명품에 대한 과도한 사랑으로 인해 일명 ‘짝퉁명품’이 쏟아지고 있고, 짝퉁명품도 그 수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정도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진품보다 더 진품 같은 가짜 명품이 판치는 가운데 명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하는 스마트폰 앱까지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나만의 것을 만드는 사람들

지난 6일 오전 10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박물관 수. 중년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자의 자리에 앉은 그들은 별다른 말 없이 가로세로 30㎝ 정도 크기의 흰 천을 들고는 이리저리 돌려보고 천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등 관심을 보인다. 규방공예품을 만드는 강좌인데 이날은 찻잔을 덮는 차포 등으로 쓸 수 있는 다용도 덮개를 만들었다. 이들은 강사의 설명에 따라 바느질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강사의 민첩한 손놀림과는 달리 약간 어설프게 시작한 이들의 손가락이 점점 속도를 냈다.

이 중 한 수강생이 10여분쯤 열심히 바느질해놨던 것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바느질한 실을 푸는 데만도 5분 이상이 걸렸다. 그 수강생은 강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부탁한다. 새로 가르쳐주면 안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날 강의를 맡은 박물관 수 이경숙 관장은 다시 한번 바느질하는 방법을 꼼꼼히 가르쳐주고 재차 바느질하는 법을 묻는 수강생의 천에다 직접 시연까지 해보인다. 그러자 그 수강생은 아까보다 더 천천히 바느질을 시작한다. 20여분 만에 차포의 한쪽 면 바느질이 끝이 났다. 어느 정도 바느질이 손에 익었는지 그 수강생의 손놀림이 제법 빨라졌다. 그래도 4개 면을 바느질하는 데만 1시간여가 흘렀다.

이날 이 관장의 도움을 받아 차포를 완성한 박태원씨는 “5년 전부터 박물관 수에서 열리는 바느질특강 등에 참여해 바느질을 익히고 있는데도 늘 쉽지가 않다. 잘 만들고 싶은데 쉽게 되지를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박씨의 말에 이 관장은 “바느질을 잘 하신다. 그런데 너무 잘 만들려고 하니 약간의 실수도 용납을 안 하셔서 그렇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갯모 등 전통자수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 수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전통자수, 규방공예품 만들기 등 다양한 바느질강좌를 열고 있다. 이날 강좌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열리는 규방공예강좌인데 복주머니, 버선 등 전통규방공예품은 물론 자수를 활용한 브로치 등 현대적인 공예품까지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든다.

이날 만든 차포는 천의 가장자리만 바느질을 하면 완성되는 것이라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바느질을 약간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바느질을 해오던 분들인지라 바느질을 잘 하지만 좀 더 잘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이 관장은 “2시간 수업 동안 소품 1~2개를 만드는데 이들 완성품은 수강생들이 가져간다. 만든 것을 직접 쓰거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바느질 한땀 한땀에 많은 정성을 쏟는다. 남들이 보면 소품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직접 공들여 만든 분들에게는 돈의 가치와는 다른 소중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수강생 중에는 퀼트 경력 20년의 베테랑 바느질꾼도 있었다. 박경림씨였는데 그날 박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청바지가방을 들고 왔다. 원래 홈패션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옷수선까지 배워서 자그마한 옷수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옷수선을 하면서 배운 기술과 퀼트를 접목해 청바지가방 등 재활용품을 이용한 가방을 만들고 있다.

박씨는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내가 만든 것을 사용해본 분들이 좋다고 해서 점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전통규방공예도 하고 있는데 퀼트, 홈패션 등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며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 나만의 소품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