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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구일보]마음을 싸두는 보자기속 저마다의 이야기 담기를
작성자 museumsoo
작성일자 2018-03-08
누구에게나 불안한 아침이 있다. 
창틈에 햇살이 환하게 묻어오는데도 떨쳐지지 않는 불안이 있는 날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서 비롯되었으나 나를 멍들게 하고 또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도 한다.
마음에도 무늬가 있고, 깊이가 있으니 한없이 좁아지는 마음을 확 펼치고 싶은 날도 있다. 

대구 보자기 축제의 저녁축제에 보자기를 몸에 두르니 멋진 현대 의상이 되었다.
감기거나 펼쳐진 천들이 바람을 따라, 몸의 움직임을 따라 접히기도 하고 펼쳐지기도 하는 보자기는 갑자기 먼 시간들을 거스르는 물길처럼 다가왔다.
무대의 길을 따라 움직이는 보자기들은 무채색의 고통으로 일그러지기도 하고, 화려한 꽃무늬로 거듭나기도 하면서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이롭고 놀라워 박수를 보냈다. 
갑자기 잊혀진 이야기들이 살아나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그 속에 내 어머니의 보자기도 보였다. 

어린 시절 새벽부터 길을 떠나기 위해 어머니는 전날부터 차곡차곡 무언가를 싸고 또 싸셨다. 
새벽어둠에도 길은 뽀얗게 드러나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길을 떠났다.
한 손에는 머리 위에 인 보자기를 꼭 쥐고, 한 손에는 어린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말(言)은 끊어지고 길만 놓여 있었다. 
가끔 걸음이 느려져서 길 한쪽에 앉아 쉬고 있을 때에도 두 손으로 머리에 인 보자기를 꼭 잡은 채 내 쪽을 가만히 보고 서 계셨다. 

올려진 두 손과 풍성한 치마 때문에 초롱꽃 봉오리 같은 종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한걸음 걸으시면 금방이라도 새벽공기 속으로 예배당의 종소리가 댕그랑 울릴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한 손을 가만히 보따리에서 떼서 손짓하면 이미 이슬에 젖은 치마를 툭툭 치며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어머니의 가는 목이, 허리가 점점 무거운 보따리에 눌리는 듯도 했지만 둥근 또아리를 다시 반듯하게 추스르고 걸었다. 

절에 다다를 때까지 어머니는 보따리를 결코 땅에 내려놓지 않으셨다.
새벽의 싸늘한 공기와 젖은 이슬에 보따리를 내어주실 수 없으셨는지, 어떤 조심스러움과 간절함이 있었다. 
늙은 보살이 반가이 받아 내릴 때 겨우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머리에 이고 절에 도착할 때까지 그 먼 길에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던 그 보자기 속의 궁금함과 말이 끊어진 그 길 위에 놓인 어머니의 기도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줄줄이 여동생만 있던 집안에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어머니의 환한 미소 속에서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보자기 속에 녹아있다.

보자기는 한자로  

,  

, 褓 등으로 표기하며 조선후기의 문헌에는 주로  

, 褓子, 福 등으로 쓰였다. 
보자기 복( 

)자와 같은 음인 복(福)이 보자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 것은 보자기에 “복을 싸둔다”는 의미를 더한다. 
또한 보자기(褓子器)가 ‘보자의(褓子衣)’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물건을 싸 두는 옷’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자기는 싸서 보내고 받는 그 마음들에 사랑과 정성을 더하는 격에 그 의미가 있다.
이처럼 보자기의 인문학적 가치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경(敬)과 성(誠)의 마음에 있다.
젊은 모델들의 어깨에 책보대신 패션보자기가 휘날린다.
대구의 보자기 축제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아이들에게 또 다른 보자기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빌어본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