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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구일보]공감·소통영역으로 이끄는 축제는 사회교육의 장이다
작성자 museumsoo
작성일자 2018-03-08
보름달 꽉 차오른 하늘 위로 매화 꽃 한 송이를 매단 그림이 있다.
매화 가지가 단숨에 달을 치고 나가 수직으로 서 있는 모습이 강직한 선비의 기상을 보여준다. 
한 송이 매화꽃은 깨달음의 끝에 이른 선비의 환희처럼 파릇한 기운마저 감돈다.

조선 중기의 화가 어몽룡의 묵매도(墨梅圖)이다.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船遊)줄불놀이는 이 선비정신의 철학적 지향점을 불꽃으로 드러낸 한편의 오페라이다. 
수년 전에 본 선유 줄불놀이는 극화된 구성과 치밀함, 예술성이 서늘한 소름을 돋게 하는 황홀한 밤을 만들었다. 
이제껏 들어 본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불꽃놀이였다.
그동안 본 불꽃놀이들은 폭죽이 하늘 높이 올라가서 한순간 눈부시게 터지고 환호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중국 소동파의 적벽놀이와 흡사하다는 이 놀이는 천혜의 절벽과 강이 어우러져 행해진다. 
탈놀이가 안동의 서민문화를 보여준다면 450년의 역사를 가진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온전히 선비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뽕나무 뿌리와 굵은 소금을 넣고 한지로 싼 숯 막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아 강의 반대편으로 보내면 줄불들이 어두운 강을 건넌다. 
줄불에 매단 불꽃들이 타들어 가면서 검은 강 위로 불티들이 별처럼 쏟아지고, 타들어 가는 훈향과 타닥타닥 소금이 불꽃에 틔는 소리까지 퍼져 그곳은 신선의 세계가 된다.

일정한 소리와 숯의 훈향과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는 빛 때문에 발아래 모래가 몸을 끌어내리듯 내면으로 침몰해 들어가서 드디어는 숨이 막히고야 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발소리마저 삼킨 고운 모래 위에 누워 아득한 생각에 잠길 무렵 건너편 절벽에서 솟갑단과 장작에 불을 붙여 65m의 부용대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그 모습은 찰라의 깨달음으로 섬광처럼 보였다. 
그 순간 모인 사람들이 함께 ‘낙화야’하고 소리치는 것은 어떤 음악보다 뭉클한 감동이다. 

줄불에 걸린 불처럼 삶의 모든 시간들이 불꽃처럼 소진되고 물 위에 띄워진 배 위에서는 시간 맞춰 시를 짓지 못한 선비에게는 벌주가 내려지고 시간 내에 멋진 시가 완성되면 다함께 낙화의 절정을 맛본다. 

겨울을 이긴 가지위에 맺힌 매화꽃 한 송이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환호하며 그 순간을 즐겼을 것이다. 
아름다운 절벽을 따라 배를 띄웠고 모든 일은 시간의 그물 안에서 성취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선비가 지향하는 삶의 모든 순간들을 이렇게 아름답고 경이롭게 압축해놓은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이 지향하는 예술적 표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축제가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극히 내적인 운율을 찾는 동양의 줄불놀이의 예술적 표현이 때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희석되었다. 
배 위의 조명을 더욱 은은하고 아름답게 하고, 강가의 연화불을 더 많이 띄워 더 극적인 깊이를 더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축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공감과 소통의 영역으로 이끄는 중요한 사회교육의 장이다. 
조하라의 창(Johari window)이론 처럼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공공영역이 넓어질수록 사회의 긴장과 갈등이 완화된다면 축제는 이러한 점에서 순 기능적인 역할이 크다.
선유 줄불놀이가 세계인에게 선비정신을 본질을 알리고 또 현대인들에게는 내면적 명상의 축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준비가 있어야겠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