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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구일보]아무 조건없는 긍정적 지지, 삶의 고단함 이기는 에너지
작성자 museumsoo
작성일자 2018-03-08
아무 조건없는 긍정적 지지, 삶의 고단함 이기는 에너지  
고기는 알맞게 익었고 소녀들은 젓가락질을 하며 연신 까르륵 웃었다.
중학생 딸과 친구들이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말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전화가 와서 식당에 마주 앉았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아직 시험기간도 아닌데 쉬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미리 공부를 해 두어야 한단다. 
고등학교 갈 성적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걱정을 한다.
그 말에 추임새를 넣어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라고 했더니 딸의 친구가 부러운 듯 ‘아줌마처럼 딸이 고등학교 입학할 성적만 돼도 좋겠다고 하는 엄마는 없을 걸요.’ 한다.

짐짓 딸은 자신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등 숯불의 따스함만큼이나 정겨운 대화들이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물건을 살 때에 같은 조건의 더 비싼 것을 원해서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다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교육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 
상담교수님과 어렵게 예약할 때까지도 합리적이고 당당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 시간 동안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들이 합리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 달라고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었어요. 아들은 다 컸기 때문에 돈의 형태로 사랑을 원하는 겁니다. 
서둘러 그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지 않으면 평생 부모에게 의존적인 인격이 됩니다.
” 졸업학점을 따듯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한 만큼 충분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자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티셔츠를 봤는데 맘에 들어. 그것 사고 싶은데 사도 될까?” 예전 같았으면 좀 비싼 것 같지 않니? 라는 한마디를 붙였을 텐데 그날은 얼른 허락했고 전화기 저편에서 뛸 듯이 기뻐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대답도 못하고 차 안에서 내내 눈물이 흘렀다.
그랬었구나. 네가 원한 건 엄마의 조건 없는 사랑이었는데 엄마의 잣대로 재단했었구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한 아들이었구나. 그날의 깨달음 뒤로 비슷한 갈등을 호소하면 이때의 경험담을 말해준다. 

그래서 한 친구는 아들과 컴퓨터를 사러 가보니 일주일 뒤에 와서 사면 가격이 많이 저렴하다고 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사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랑이란 우리에게 현실의 합리성을 넘어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상태를 요구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로져스가 말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spect)”은 아들이 불확실한 미래와 맞서고 있을 때 그런 긍정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정신의 자양분을 만드는 때인 것이다. 

저녁을 먹고 또다시 학원을 가야 하는 바쁜 일정들이 소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의 저녁공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스스로 몰아세워 학원을 간단다.
이미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할 말을 잃어 혼자 독백처럼 말한다.
‘이제 숯이 제대로 타오르네, 된장찌개가 알맞게 끓여진 것 같아, 가슴에 꿈을 잃지 않으면 이렇게 어느 순간 다시 타오를 수 있어, 하지만 그 불씨를 간직하지 않으면 타오르기가 쉽지 않겠지? 불꽃이 꺼지지 않을 만큼만 쉬어가면서 해도 되는 거야.’ 그 밑도 끝도 없는 해법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젠가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 불씨를 잘 간직할 거라고 말한 것 같다.
소녀들의 표정은 든든한 배만큼이나 행복해 보인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