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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이경숙의 실과 바늘이야기] 꽃피는 시간
작성자 museumsoo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꽃피는 시간

 

발행일 2020-05-22

풀먹인 이불 박하향 같은 오월의 청량함
 

2020052201000485600018722
1970년대 면 화조문 자수 방석.
 
2020052201000485600018723
1970년대 면 공작문 횃댓보.
 
2020052201000485600018724
1970년대 면 영자문 책상보.
깨고 나니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누군가 생채기가 난 무릎을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호호 불면서 "참, 아팠겠다" 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포근하고 따뜻하였는데 꿈이었던 것이다.

꿈 때문에 무릎을 들여다보니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지도 모르는 채 벌써 아물어 가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바빠서 제 몸에 난 생채기 한 번 돌아다보지 못했을까.

그 꿈을 꾼 그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기운 맑은 청도에 갈 일이 있는데 틈나면 동행하자고 하였다. 본능적으로 일이 먼저 떠올라 시간이 안 된다고 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따라나섰다. 오히려 나의 합류 때문에 일행들이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길에서 오월이 주는 맑고 부드러운 청량감이 온몸에 스몄다. 알맞은 온기와 간간이 부는 바람에 꽃과 풀의 신선한 향기가 스며있었다. 풀 먹인 면포의 깨끗하고 가슬가슬한 느낌이 공기 속에서 느껴졌다. 힘없이 부드럽기만 한 천에 풀을 먹인다는 것은 약간의 긴장을 더해 옷이든 방석이든 그 형태를 더 온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그 적당한 긴장의 칼칼함이 마음조차 곧게 잡아주는 듯해 나는 풀 먹인 옥양목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풀 먹인 이불의 박하향 같은 냄새가 코끝에 찡하게 다가온다. 풀 먹인 새 이불의 냄새가 좋아서 얼굴 끝까지 끌어다 덮곤 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정작 그리운 것은 그 이불들을 매만졌던 손끝 매운 어머니였다. 다시는 그 이불들을 매만질 수 없이 오랜 병원 생활을 하는 어머니.


갑작스럽게 동행한 청도의 고즈넉한 시골집
온몸에 스며드는 바람·꽃·풀과 신선한 향기

빨래 삶는 냄새와 함께 기억되는 어머니
삶아진 흰 옥양목,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깔

귀한 글귀·꽃·공작문 수놓은 십자수 방석
좀더 멋스럽고 세련되게 인식 영문도 유행
안전·행복하게 가족 지키는 한결같은 염원



어느덧 들 한가운데 고즈넉한 시골집에 도착했다.

친구는 미리 몇 송이의 붉은 꽃을 매달고 있는 선물로 준비한 화분을 건네며 인사했다. 화분을 받아 든 선배님의 얼굴이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일행을 반겨 주었다. 농막의 입구에는 겹벚꽃이 탐스러웠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꽃병에 활짝 핀 철쭉이 희고 붉게 향기를 내고 있었다.

방금 꽂은 듯 그 싱그러움이 눈길을 끌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먼 길을 오는 후배들을 위해 그렇게 꽂으셨단다. 옛 어머니들이 손님이 오면 하얗게 풀 먹인 수놓은 꽃방석을 방석 귀까지 반듯이 매만져 내어놓듯, 멀리서 올 후배들을 위해 꽃을 꽂으셨다. 밖을 나서면 마당에 지천으로 널린 꽃들을 볼 수 있는데도 한 가지 골라 꽃병에 꽂아 주신 것이다. 친구는 선물할 화분을 고르면서, 선배님은 화병에 꽂을 철쭉꽃을 고르면서 이미 서로의 마음에 꽃처럼 피어 있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다"는 황지우 시인의 글귀가 떠올랐다. 서로를 이미 마음에 꽃처럼 품었으니 만나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식탁에도 다식과 함께 빈 찻잔이 놓여 있었다. 방금 내린 차 한 잔의 온기로 치열했던 시간들의 열정과 동굴처럼 깊었던 고통과 슬픔들이 곰삭아 내렸다.

기다림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에 따뜻한 그 무엇이 강물처럼 흘러 찻잔을 건너 내 마음을 적신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삶고 헹구어낸 시간들이 흰 머리카락과 곱게 주름진 이마 위로 맑은 별빛처럼 반짝였다.

내 어머니도 늘 빨래 삶는 냄새와 함께 기억되곤 했다. 마당의 긴 빨랫줄에는 늘 방금 삶아서 눈부시게 흰 빨래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나는 그 청량한 향기가 좋아서 길게 늘어뜨려진 빨래 끝에 매달려 있으면 때 묻는다고 엄마는 눈을 흘기신다. 빨래가 꼬들꼬들 말라갈 즈음 다시 거두어 다듬이질을 한다. 삶아진 눈부시게 흰 옥양목의 색들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옛 십자수 방석에는 귀한 글귀까지 수놓아져 있는데 그 글귀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일편단심(一片丹心), 영원무궁(永遠無窮), 희(囍), 수(壽), 복(福), 행복(幸福) 그리고 시대에 따라 스위트홈이라는 영문도 많이 써 넣었다.

꽃과 공작문도 단골 소재였다. 1970년대 유행했던 십자수에 영어가 자주 등장한다. SWEET HOME, HOPE 등으로 영어로 써넣을 때 좀 더 멋스럽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시대적 조류가 느껴진다. 수 놓인 내용 중에 "우리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집밖에 없다"는 영문 글들은 지금 읽으니 다시 새로운 무게로 다가온다. 고난의 역사를 견디는 동안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내 가족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삶고 헹구며 정성을 다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60을 바라보는 나이의 지금에도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붉은 해가 넓은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막 넘어가고 있는 찰나(刹那)였다. 우리의 얼굴도 해질녘 석양과 동색이 되었다.

"선배님 이 땅을 산 지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요? 그동안 이곳에서 크고 작은 추억들을 우리에게 많이 주셨지요."

그렇게 60을 바라보는 후배와 70을 바라보는 선배의 이야기가 마당의 한가운데에 서서 시작되었다.

"그렇지, 30여 년 전 사과농장이던 이곳을 우연히 들렀는데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노을을 보기 위해 이 땅을 샀지.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났네."

아 ! 노을을 보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서 땅을 사다니… 놀란 가슴까지 활짝 열리는 말이었다. 노을이 편안하게 천천히 내릴 수 있는 이 평지의 땅을 샀구나.

"몇 해 전부터는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 해 지는 시간 동안 오래 서 있기 어려워 흔들그네도 샀지…." 그렇게 노을을 보기 알맞은 시간을 맞추어 저녁을 먹고 흔들그네에 함께 앉아 해 지는 그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두 사람의 중요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 지는 노을과 동색이 되어 한 쌍의 공작처럼 앉아 있었을 것이다.

십자수 횃댓보에는 "日暮夕陽 松鶴一色(일모석양 송학일색)"이라고 수 놓아져 있다. 날 저무는 석양이라 소나무와 학이 일색이라는 뜻이다. '一色(일색)'은 같은 색, 또는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상태를 말한다. 왼쪽에는 '희망'이라고 적어 놓아 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것을 기원한 자수임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이 횃댓보에 수놓아 기원했던 그 경지와 지금 부부의 모습이 너무 닮아있다.

"여기 이곳에 피는 허브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지… 여름이면 한 무더기로 화환처럼 피어올라서 농장 모든 곳에 향기를 퍼뜨리지. 지금 여긴 붓꽃 자리인데 여름이면 흰색 보라색이 얼마나 많이 피는지 몰라…." 마당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아직 피지 않은 꽃들의 이야기며 이른 봄 지고 간 꽃들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늦게 태어나는 자들의 행복은 더 읽을 게 많다는 것" 이라고 한 김점선 화가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해보자면 "더 오래 사는 것의 행복이 피고 지는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고, 석양의 노을이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해본다.

지난 밤 꿈속에서 생채기에 난 상처에 호호 입김을 불며 위로해 주었던 사람이 오늘 불현듯 여행에 초대해준 친구인가 싶다. 그 꿈은 때로는 다 큰 어른에게도 위로가 필요하고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가 보다.

오늘처럼 해 지는 저녁 꽃의 이야기로 도란도란 하루 해가 저물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유난히 꽃을 사랑했던 어머니께 곱게 풀 먹인 손수건에 꽃수 하나 놓아 드려야겠다.

박물관 수 관장